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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실질적인 영역 그리고 역사에 대한 나의 견해 Opinions


한나라의 실질적인 영역이다. 한나라 당시, 오늘날의 양자강 이남 지역에는 그렇게 실질적인 통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한 말기의 군벌인 유비와 손권이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을 때도 분명히 월족들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왕조 시기 이 지역을 두고 지속적인 정벌과 개척이 병행되었다. 제갈량의 남만 정벌이나 손권의 산월족 토벌, 감시가 그 예다. 양자강 이남의 이민족 뿐만 아니라 북방의 흉노족, 서방의 강족 등 많은 제 민족들이 한나라 경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보통 호(胡)라고 불렀다. 오늘날로 따지면 재중 외국인들인 셈이다. 특히 조조 때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 정책이 많이 벌어졌다.

토벌, 개척, 이주란 세 단어는 중국사에서 꼭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한국 역사에도 토벌, 개척, 이주란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 조선 시대에 이런 정책이 많이 이뤄졌다. 당시 만주 지역은 중심이 되는 세력이 없었다. 여러 여진 부족들이 흩어져 거주했다. 중국사에서 이민족들이 새내(塞內)를 여러 차례 침공했듯이, 한국사에서도 여진족들이 조선 북방 2도를 계속 침공했다. 그래서 세종 시기에 4군 6진을 설치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삼아 국방을 도모했다. 그 뿐 아니라 여러 차례 압록강을 넘어 여진 부족들을 토벌했다. 그리고 4군 6진 지역에 여러번 사민 정책이 이뤄졌다.  비록 세종 사후 단종 시기와 세조 시기를 거쳐 4군은 완전히 폐지되어, 숙종 때까지 폐4군이란 명목으로 거의 공지에 가깝게 된 셈이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이나 영토 크기만 달랐지 지도자들의 마인드는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인지도.

이 사실을 볼 때 역사는 사람들의 마인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들의 철학과 국가 경륜 방식을 읽어내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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