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삼국지'나 다른 광개토왕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광개토왕을 신격화시킨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삼국지'의 경우, 광개토왕이 산천 제사를 거행한 후 황룡을 타고 왕비와 함께 승천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삼국지'는 매우 좋은 책이나 이 점에서 조금 에러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당대 고구려인들이 광개토왕을 신격화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광개토왕을 신격화했단 흔적은 금석학 자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릉비(호태왕비, 이하 능비)를 보아도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 능비는 당대 기록으로 당대 고구려인의 시각이 반영된 1차 사료 중의 1차 사료이다. 광개토왕을 그렇게 신격화했다면 분명히 그렇게 흔적이 남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구려인들은 그렇게 그를 기억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구려인에게 있어 광개토왕은 가장 현실적인 중흥 군주였을 것이다.
'광개토대제'란 소설은 고증이 엉터리임을 떠나 아예 말도 안되므로 논외로 하겠다. 그런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능비의 '백신 토곡'이란 단어에서 토곡을 토욕혼으로 비정하는데, 물론 당시 고구려의 팽창 일로를 봐서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광개토왕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이 정말 광기에 넘치는 정복자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과정은 너무 무모했으며 오히려 성공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 결과 제국의 분열을 낳고 말았다. 기록을 미루어 광개토왕은 그렇게 광기로 가득찬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자는 토욕혼을 정벌하여 북위를 견제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그 또한 근거는 없다. 우선 북위가 고구려에 있어 1차적인 경계의 대상이었는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모용희 즉위 전의 후연은 고구려에 있어 위협의 대상이었다. 모용희의 실정으로 후연의 국력이 약화된 것일 뿐이다. 그렇게 볼 경우 고구려에 있어 1차적인 경계 대상은 북위보다 후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시 북위는 장수왕 때 만큼 팽창 일로에 서 있지 않았다. 게다가 고구려에 있어 화북 지역 정세에 개입할 의도는 전혀 없으므로 북위와 크게 충돌할 이유는 없다. 혹자의 의견대로 유주를 고구려가 일시적으로 통치했다해도 그것은 후연을 경계하기 위함이지 북위를 경계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이를 볼 때 북위는 고구려의 견제 대상은 아니다. 고구려에게도 화북 지역을 간섭할 의도는 없으므로 그냥 화친을 맺고 끝내는 것이 나라에 있어 더 이득일 것이다.
실제로도 주변부를 정벌함에 있어서도 약간의 고구려의 억지는 있더라도 아주 현실성이 없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능비에도 드러난다. 오히려 광개토왕의 정벌은 국제 정세에 있어 고구려 위상의 재확인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목적이 더 강하다. 즉, 현실성이 있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인들에게 광개토왕은 그저 천손으로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결코 그는 소설들이 묘사하는대로 신기, 나쁘게 말해 광기에 넘치는, 이상주의적인, 공명심이 높은 인물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현실적인 중흥 군주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광개토왕의 치적이 폄훼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는 오히려 현실 감각이 있는 전제 군주였던 것이다.
어쩌면 고구려인에게 있어 광개토왕은 가장 현실적인 중흥 군주였을 것이다.
'광개토대제'란 소설은 고증이 엉터리임을 떠나 아예 말도 안되므로 논외로 하겠다. 그런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능비의 '백신 토곡'이란 단어에서 토곡을 토욕혼으로 비정하는데, 물론 당시 고구려의 팽창 일로를 봐서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광개토왕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이 정말 광기에 넘치는 정복자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과정은 너무 무모했으며 오히려 성공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 결과 제국의 분열을 낳고 말았다. 기록을 미루어 광개토왕은 그렇게 광기로 가득찬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자는 토욕혼을 정벌하여 북위를 견제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그 또한 근거는 없다. 우선 북위가 고구려에 있어 1차적인 경계의 대상이었는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모용희 즉위 전의 후연은 고구려에 있어 위협의 대상이었다. 모용희의 실정으로 후연의 국력이 약화된 것일 뿐이다. 그렇게 볼 경우 고구려에 있어 1차적인 경계 대상은 북위보다 후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시 북위는 장수왕 때 만큼 팽창 일로에 서 있지 않았다. 게다가 고구려에 있어 화북 지역 정세에 개입할 의도는 전혀 없으므로 북위와 크게 충돌할 이유는 없다. 혹자의 의견대로 유주를 고구려가 일시적으로 통치했다해도 그것은 후연을 경계하기 위함이지 북위를 경계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이를 볼 때 북위는 고구려의 견제 대상은 아니다. 고구려에게도 화북 지역을 간섭할 의도는 없으므로 그냥 화친을 맺고 끝내는 것이 나라에 있어 더 이득일 것이다.
실제로도 주변부를 정벌함에 있어서도 약간의 고구려의 억지는 있더라도 아주 현실성이 없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능비에도 드러난다. 오히려 광개토왕의 정벌은 국제 정세에 있어 고구려 위상의 재확인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목적이 더 강하다. 즉, 현실성이 있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인들에게 광개토왕은 그저 천손으로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결코 그는 소설들이 묘사하는대로 신기, 나쁘게 말해 광기에 넘치는, 이상주의적인, 공명심이 높은 인물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현실적인 중흥 군주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광개토왕의 치적이 폄훼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는 오히려 현실 감각이 있는 전제 군주였던 것이다.
태그 : 광개토왕
덧글
더불어 '우리나라 삼국지'에서 광개토태왕에 대해 그처럼 묘사한 건 아마 중국측 발굴조사로 밝혀진 고구려 적석총의 구조와 묘역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군총이나 태왕릉을 보면 주변으로 상당히 광범위한 묘역을 지니고 있으며, 배총이나 제단으로 보이는 즙석유구들도 주변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군총 최상부에는 목책을 두르고 그 위에 뭔가 구조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그것을 무덤으로만 끝내는게 아니라 신전 혹은 제단처럼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었던 것일 테고요.
그나저나 전체적으로 저도 개인적으로 광개토태왕이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 자체가 정복군주라는 표현 때문에 그렇게 상상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전 개인적으로 광개토태왕이 용장이나 맹장 스타일보다는 지장 쪽에 가까운 스타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삼국사기를 보면 광개토태왕이나 장수태왕 모두 체격이 크다(장대하다)고 적혀 있지만, 그게 반드시 항우나 여포와 같은 캐릭터는 아니었을 것으로 봅니다. 체격이 크고 카리스마도 넘치는 지략이 뛰어난 장수?? 뭐 이 정도? ㅋㅋㅋ 제가 만약 만화나 소설의 주인공으로 광개토태왕을 선택한다면 다소 훈남형 스타일에 똑똑하고 쌈 잘 하는 그런 만능형으로 만들고 싶다능...
이 무슨 삼천포같은 소리를...그럼 이만...휘리릭~~